시시콜콜한 이야기
어느 여름날, 텅 비워진 집이 아쉬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옥주는 아빠 병기의 재촉에 이삿짐을 옮겨 실은 작은 봉고차에 마지못해 올라탑니다. 카메라는 옥주네 가족이 탄 봉고차가 살던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롱테이크로 아주 오래 보여줍니다. 마치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옥주의 마음을 표현하는 듯 말입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어린 남매의 할아버지 영묵의 오래된 주택입니다. 밥을 먹으며 괜스레 옥주에게 눈치 보지 말라고 하면서도 방학 동안만 잠시 머물겠노라고 영묵의 눈치를 보는 건 정작 병기입니다. 쌍꺼풀 수술이 하고 싶은 옥주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녀입니다. 비록 병기로부터 수술비를 못 받아 서운은 하지만 영묵의 생일 파티에 아무도 준비하지 않은 선물까지 준비하며 영묵을 기쁘게 하는 옥주입니다. 그러면서도 공연히 만만한 남동생 동주를 골려주기도 하는데요. 할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둘만 남은 옥주와 동주. 누나한테 배고프지 않냐며 라면을 끓여준다는 동주에게 라면을 끓여주며 때려서 미안하다는 옥주. 그런 옥주에게 우리가 싸운 적이 있냐며 능글능글 웃어버리는 동주는 다음엔 자기가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합니다. 평소에 싸우거나 데면데면하다가도 집에 큰일이 나거나 부모님이 집을 비우시면 아주 둘도 없는 우애 깊은 남매가 되던 필자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피식했던 장면이었습니다. 영화에는 두 쌍의 남매가 등장합니다. 어린 남매의 아버지 병기에겐 여동생 미정이 있습니다. 미정과 병기는 그렇게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고 가끔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모이면 추억 얘기에 도란도란 즐겁고 또 이제는 서로 의지하게 되는 남매입니다. 두 남매의 시시콜콜하지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는 영화 '남매의 여름밤'입니다.
미성년
처음엔 옥주와 동주 남매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점점 병기와 미정 남매의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아직은 풋풋한 어린 남매와 현실이 팍팍한 어른 남매의 대비되는 모습이 씁쓸하면서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영묵이 아프자 요양원을 보내기로 한 어른 남매는 공연히 어린 남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고, 옥주는 왜 그걸 우리가 결정하냐며 할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것은 우리라고 꼭 집어 말합니다. 하지만 이후 병기와 미정은 집을 내놓게 되고, 요양원도 알아봅니다. 이런 상황을 옥주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병기가 영묵에게 포도 한 접시를 드리고 바로 문을 닫고 나오는 장면과 옥주가 거실에서 영묵이 맥주 한 잔에 음악 감상하는 걸 보고 슬며시 자리를 피해 주는 장면이 대비되어 왠지 모르게 슬프기도 합니다. 결국 병세가 심해진 영묵은 죽게 되고 아직 팔리지 않은 집에 3명의 가족만이 덩그러니 남아 저녁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옥주는 소리 내어 울고 맙니다. 혹시 아빠 신발을 훔치지 않았다면 아빠가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려 하지도, 할아버지 집을 팔려고 하지도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걸까요? 아니면 그저 엄마가 보고 싶고 할아버지가 그리워서였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왜 자신에게만 이다지도 삶이 무겁고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요? 옥주보다는 미정의 나이에 가까운 필자여서 옥주의 마음을 잘은 모르겠지만, 옥주만은 그 세심하고도 예쁜 마음을 잃지 않고 미정이 아니 필자의 나이가 되길 바라봅니다.
곧 닥칠 상실의 시대
감독은 "할아버지의 죽음은 모두 겪고 싶지는 않지만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하며, 상실은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것이고 상실로 인한 상처 때문에 죄책감을 가지는 대신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롭거나 나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 이 영화가 그들의 곁에서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제 곧 필자에게도 닥쳐 올 상실의 시대를 감독의 말처럼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후회와 죄책감이 들지 않도록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면 조금 덜 힘들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미 경험한 사람들, 겪어내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경험하게 될 사람들에게 영화 '남매의 여름밤'이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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