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줘서 고마워요
사실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봤을 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보이는 병운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 제목이 멋진 하루인 걸까? 희수는 병운을 다시 만나 헤어졌던 그때의 내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받고 싶었던 걸까? 당시엔 음악만 좋았던 영화였는데, 최근에 다시 보니 병운이 어찌나 이해가 되던지요. 그냥 저녁 한 끼 따뜻하게 먹이고 보내지 않은 희수가 살짝 얄미울 정도였습니다. 물론 희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렇기에 헤어진 것이었겠지만 그런 희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인정해주는 병운을 왜 그렇게 사람들(특히 여자들)이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나 봅니다. 병운에게 희수와 헤어지고도 여전히 똑같이 잘 지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은 걸 보면 말입니다. 영화는 희수가 경마장으로 병운을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두 사람은 이미 1년 전에 헤어진 사이로 보이고, 희수가 병운에게 돈 350만 원을 빌려주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희수는 병운에게 지금 당장 돈을 갚으라며 닦달합니다. 아마도 희수와 헤어질 때부터 사정이 안 좋았던 것 같은 병운은 현재도 여전히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당황스럽지만 1년 만에 나를 찾아온 희수를 보니 그냥 좋은 병운입니다. 병운은 그런 사람입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돈을 빌려서라도 주겠다는 병운이 맘에 안 들지만 방법이 없는 희수는 할 수 없이 병운의 돈 빌림 여정에 동행하게 됩니다. 그렇게 희수와 병운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희수는 병운과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까요? 희수는 왜 병운을 찾아왔을까요? 영화를 보고 나면 희수와 병운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까요? 제목처럼 그들은 멋진 하루를 보내게 될까요? 두 사람의 여정에 잠시나마 동행하면 내 하루도 조금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를 영화 멋진 하루입니다.
희수에게 멋진 하루를 선물한 병운
희수의 성격상 아마도 빌려준 돈이라는 핑계가 있어 병운을 찾아올 수 있었을 겁니다.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의 사정 때문에 버린 사랑이 두고두고 미안했을 테니까요. 헤어질 때도 돈을 빌려줄 때도 병운은 정확하게 희수를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병운은 희수의 미안함을 덜기 위해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병운과 달리 희수는 병운을 버리고도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병운과 헤어진 똑같은 이유로 말입니다. 그런 일을 두 번이나 겪고 희수는 병운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 걸까요? 병운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그의 여전한 가벼움과 따뜻함 사이 그 어딘가를 느끼며 그의 그런 모습이 그리웠던 거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자신의 얘기를 슬쩍 꺼내놓기도 합니다. 헤어지고 1년 동안 그에게 갖고 있었던 희수의 죄책감은 하루 동안 조금 덜어졌을까요? 아마도 병운이 굳이 오늘 돈을 갚겠다며 하루 동안 희수를 데리고 다녔던 건 희수에게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희수는 먼저 다가가는 사람은 아닙니다. 왜 희수가 병운을 만났을까 싶었는데 중간중간 병운을 보면서 희수에게 병운은 너무 편안한 사람이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도 희수였을 겁니다. 마지막에 병운과 헤어지고 돌아가면서 살짝 미소 짓는 희수를 보니 오늘 하루가 그녀에게 적어도 괜찮은 하루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 하루로 내일을 나아갈 힘이 되었길 바라봅니다. 물론 병운은 걱정되지 않습니다. 엔딩에도 나오지만 그는 언젠가는 원하는 바를 꼭 이룰 힘을 가진 사람이니까요.
병운에게 돈을 빌려주는 그녀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점이 바로 돈을 갚기 위해 돈을 빌리는 병운과 그에게 선뜻 돈을 빌려주는 여자들이었습니다.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 돈거래라고 굳게 믿는 필자에게 너무도 생경한 장면들이었는데, 아마 희수도 처음엔 필자와 비슷한 시각으로 병운과 그녀들을 바라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첫 번째로 돈을 빌려준 여사장은 병운의 사교력이 맘에 드나 봅니다. 재밌는 건 돈을 병운에게 주지 않고 희수에게 직접 주는 점이었는데, 아마도 인생 경험이 많고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여사장은 그 돈의 무게를 희수가 느끼길 바랐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여사장이 병운의 능력을 높이 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합니다. 두 번째로 돈을 빌리러 간 사람은 병운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현재는 이혼하고 딸 하나를 키우는 싱글맘인데, 동창의 형편 때문인지 바로 돈을 빌리지는 못합니다. 다음 돈을 빌리러 간 여자를 기다리다 예전에 스키를 가르쳤던 제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 제자도 선뜻 10만 원을 병운에게 빌려줍니다. 대체 병운은 어떤 사람이길래 우연히 만나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스키강사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것인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찾아간 여자는 기어코 희수를 만나야 돈을 빌려주겠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여자를 만나러 올라간 희수는 여자로부터 스스로의 마음을 꿰뚫는 막말을 듣고 발끈해 여자에게 모진 말을 하지만 오히려 그 여자가 상처받았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마지막으로 아까 낮에 돈을 빌리러 찾아갔던 병운의 동창으로부터 돈을 받게 됩니다. 돈을 받은 희수는 그 동창의 형편이 생각나 왜 병운에게 돈을 빌려주는지 물어봅니다. 본인도 어려우면서 친구를 위해 돈을 빌려줬다는 병운의 얘기를 들은 희수는 자신의 죄책감을 지우려 돈을 빌려주었던 스스로가 못나보였는지 동창에게 그 돈을 다시 돌려줍니다. 물론 그 동창도 만만치 않아 반만 받기로 하지만요. 이렇게 병운과 하루를 보내며 희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내가 사랑했던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시 한번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희수는 아마도 이 하루를 통해 내가 사랑했던 그와 내가 버렸던 그, 그리고 나의 죄책감을 이제 놓아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필자 역시 병운을 보며 닫힌 사고를 조금은 열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그와 그녀의 하루를 그린 영화 멋진 하루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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