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미안합니다. 서래씨의 진심을 몰라봤습니다. 서래는 호미산으로 해준을 불러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유골을 뿌려 달라고 부탁하고, 해준이 정상에서 유골을 뿌릴 때 서래가 해준에게 다가오는 그 순간 해준과 같이 서래를 의심했습니다. 서래를 의심하지만 사랑하는 해준은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그대로 서서 눈을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서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해준의 눈으로 서래를 사랑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서래를 이해할 수 없었고 마음껏 사랑해주지 못했습니다. 서래가 울음을 머금고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라고 해준에게 물어볼 때조차도 말입니다. 서래가 보여주는 모든 행동의 중심에는 해준이 있었음을 마.침.내. 마지막 엔딩 장면을 보고 나서야 가슴 아프게 깨닫고 말았습니다. 파도가 칠 때마다 내 마음을 할퀴는 듯한 고통을 주고 마지막 엔딩곡이 흘러나올 때에는 그대 몰라봐서 미안하다고 가만히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두 번째 영화를 볼 때에는 서래에 감정 이입하여 서래가 하는 모든 행동이 해준을 향하고 있었음을 온전히 느꼈고, 그래서인지 마지막 엔딩은 처음보다 훨씬 덜 고통스러웠으나 어딘가에서 서래가 해준이 후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기를, 그래도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봅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해준은 쉽지 않은 사람입니다. 적어도 서래에게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만만할 수 있을까요?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해준을 위해 잔인한 사건을 해결해주고 재워주고 싶은 서래의 그 마음은 절대 해준을 만만하게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잃어버린 해준이 서래를 떠나 공허하게 지내는 중에 또 다른 살인사건으로 나타난 서래가 어떻게 보였을까요? 반갑기도 했지만 하필 살인사건으로 나타난 서래가 얄미웠을 것입니다. 나를 또다시 무너뜨릴 수 있는 단 한 사람, 바로 서래였으니 말입니다. 해준에게 서래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그럼에도 나를 언제든 망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왜? 바로 해준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해준은 서래가 야속합니다. 서래를 피해 도망치듯 온 이곳까지 와서 해준을 흔들어 놓으니 말입니다. 해준이 서래에게 한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는 결국 "나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이었다는 걸 영화를 두 번 보고 난 지금은 이해가 됩니다. 물론 두 번 보고 나니 해준이 사실 유부남이면서도 서래를 마음에 두고 스스로를 속이는 찌질한 남자, 지극히 평범한 사람, 만만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쨌든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의 진심을 모르고 상대방에게 내가 만만하지는 않을까?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그 마음들이 안타까웠습니다. 왜 우리는 진심을 그대로 그 순간에 느낄 수 없었을까? 타이밍은 또 왜 이리 나쁠까? 영화 속에 나오는 안개같이 뿌옇게 보이지 않는 진심들이 생각나는 영화였습니다.
사랑한다는 고백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이에 늘 싸움의 원인이 되는 첫번째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래는 고백이라고 하고 해준은 언제 내가 고백을 했냐고 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늘 몸을 사리고 뒤늦게 후회하는 여러 해준이 생각났습니다. 용의자인 서래에게 비싼 초밥을 사주고 치약까지 짜주는 해준. 서래가 밥도 안 먹고 아이스크림만 먹고 잠드는 걸 보고 중국식 볶음밥까지 해주는 우리의 해준. 늦은 밤 서래와의 문자메시지에 설레어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행복해하는 해준. 서래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정상적인(?) 사랑의 표현이란 표현은 다 해놓고 고백은 아니라는 해준. 마.침.내. 그녀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자신의 사랑을 깨닫는 우리의 해준. 평생 후회라는 감옥에서 살아갈 해준. 갑자기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대사가 생각납니다. 이 대사를 해준씨에게 꼭 해주고 싶습니다. "해준씨, 이런 확신은 일생에 단 한번 찾아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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